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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원의 기록여행] 양주를 담보로 받은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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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너누구 작성일25-11-19 09:36 조회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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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범죄 사건으로 세상의 이목을 끌던 조흥은행 50만원 사건은 드디어 그 전모가 나타났다 한다. 금년 1월26일 어떤 자가 은행 서류를 위조하여 전기 광주출장소로 가서 자기는 조흥은행원인데 <a href="https://da-sayo.com/" target="_blank" >양주매입</a> 인감을 찍어달라고 요구한 후 날인을 받아 간 사건이 있은 다음 2월 1, 4 양일에 걸쳐 전기 저금 중 49만 8천600원이 은행에서 지불되어 감쪽같이 없어졌다.' (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6년 9월 8일 자)

은행에 예금했던 50만원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해방되던 해 연말에 생필영단(生必營團)은 벼를 사들이려고 준비한 자금을 조흥은행 본점에 맡겼다. 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듬해 봄에 맡긴 돈을 찾으러 갔으나 인출되고 없었다. 지능범죄 사건으로 지목한 이유였다. 조사 결과는 내부자의 소행으로 드러났다. 은행원이 인장을 위조해 예금을 가로챘다. '생필영단'은 부족한 생필품의 공급을 원활하게 하려고 만든 특수재단이었다.

해방 후에는 은행 돈을 둘러싼 사건이나 잡음이 적잖았다. 다들 살림이 어려워 은행을 이용해 돈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많았던 탓이다. 경제난은 개인이나 기업을 가리지 않았다. 해방 직후 대출금리가 2전에서 5전으로 인상되면서 돈 가뭄은 더 심해졌다.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들은 은행의 입맛에 따라야 했다. 은행 종사자 중에는 이를 빌미로 일정액의 이익분배를 요구했다. 대출 부정 사건이 이어진 이유였다.

은행의 대출제도 또한 편법 동원으로 이어졌다. 10만원이 넘는 대출은 허가제였다. 대출 허가제는 일제강점기부터 시행해 온 제도였다. 대출을 많이 받을 요량으로 사람들은 여러 명이 <a href="https://da-sayo.com/" target="_blank" >양주매입</a> 나눠 대출을 신청했다. 은행은 대출자의 속임수를 알고도 모른 체 했다. 당시 은행은 대출을 담보로 직접 상품을 취급하기도 했다. 생필품을 받아 창고에 두는 바람에 물가 폭등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왔다. 담보물 중에는 양주도 있었다. 뿌란데로 불렸던 브랜디였다. 당시 양주는 색소를 섞은 가짜가 나올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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